경완
국어국문학과 부전공 #2 - 무라카미 하루키 본문
세상 사람들은 톱니바퀴의 부품처럼 각자의 역할을 맡으며 살아간다. 예전에 읽었던 요시노 겐자부로의 책에서, 우리 인간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맞물린 톱니바퀴의 부품처럼 표현된다. 문명이라는 거대한 기계 속 하나의 도구로서 세상의 일부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나는 한 때 집 근처 편의점에서 계산 부품으로 생활한 적이 있다. 우리 편의점은 여러 개의 학원이 있는 건물의 1층에 있어서 저녁 시간이면 먹을거리를 사러 오는 중고등학생들로 북적였다. 비슷한 부류의 편의점들 중에서도 우리 가게는 특히 좁은 면적에 비해 사람이 많이 몰려서 나가는 문의 직전까지 계산줄이 늘어지곤 했다.
온 종일 바코드만 찍는 상황이 그야말로 기계로 대체하기 딱 좋은 상황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름의 자기계발 방식을 찾기 위해 노력하다가 오디오라는 방식에 정착하게 되었다. 손은 바코드를 찍고, 입으로는 가격을 말하고, 직원으로서 좋은 행실이 아닐지 모르겠지만 귀로는 오디오를 들었다. 정말 다양한 내용의 팟캐스트 혹은 정제된 정보들을 청취했다. 나름의 노력으로 찾아낸 편의점 일의 장점은 2시간이 넘는 분량의 오디오를 하루에 3개까지도 완전히 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8월 14일 일요일, 아침 나절에 칼라 토머스와 오티스 레딩의 음악을 들으면서, 1시간 15분간 달렸다. 오후에는 체육관의 풀에서 1300m 수영하고, 저녁에는 해변에 가서 수영을 했다. (중략)
소설을 쓰자고 생각하게 된 날짜를 정확히 기억해낼 수 있다. 1978년 4월 1일 오후 1시 반 전후였다. 그날 진구 구장의 외야 속에서 나는 혼자 맥주를 마시면서 야구를 관전하고 있었다 (중략)
"그렇지, 소설을 써보자" 라는 생각을 떠올린 것은 바로 그 순간의 일이다.
맑게 갠 하늘과 이제 막 푸른 빛을 띄기 시작한 새 잔디의 감촉과, 배트의 경쾌한 소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 때 무라카미 하루키를 알게 되었다. 그는 매일 달리고, 수영하고, 소설을 쓴다. 야구를 보던 어느 날 갑자기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유명해졌다. 유명해졌다는 표현이 아쉬울 정도로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소설을 쓴 뒤 운 좋게 성공했다고 말하는 이 작가에 대해, 처음 읽었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서문에 적힌 말도 안되는 근면성실함과 담담함에 대해 궁금해졌다.
오디오를 들은 다음 주에, 교보문고에서 책을 구매했다. 책을 읽으며 매 페이지 마다 등장하는 그의 철학과 담담한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새로 구매한 미도리 노트에 보라색 잉크와 만년필로 인상 깊은 문장들을 전부 받아 적었다.
무엇이 필요한가 - 말할 것도 없이 지속력입니다(180p)
아무리 근면성실함의 아이콘이라고 해도 분명 달리고 싶지 않은 날이 그에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무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라 되뇌면서 이래저리 따질 것 없이 그냥 달렸다고 한다. '아무튼'이라는 말에는, 아무래도 비논리적인 무식함이 섞여있지만, 강한 자기신뢰와 결정에 대한 책임감이 섞여 있는 것 같다.
그가 작성한 에세이 몇 권을 더 찾아 읽었다. 그리고 국어국문학과에 부전공 신청을 넣었다. 어째서 부전공을 택하게 되었냐고 물으면, 여러가지 이유가 있고 때로는 '나도 문득 소설이 쓰고 싶어졌다.' 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어떤 이유도 딱히 주요한 동기가 된 것은 아니었다. 따지자면 나는 '아무튼' 새로운 선택을 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의 반대편에 있는 곳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성실함을 모방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국문학과에서의 3개 학기는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접해보지 못한 수업 방식과 내용이 생각보다 버거워서 힘든 학기를 보내기도 했었지만, 결국 포기하지 않고 익숙해진다면 어떤 분야에서라도 성실함은 동작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마지막 두 개의 학기에서는 만점 장학금이라는 성취를 얻기도 했다. 나라는 사람이 가진 능력이 있다면, 지금 하는 선택이 무엇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내가 선택하고 노력한 만큼 적응할 것이고, 분야와는 관계 없이 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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