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열정 - 아니 에르노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은 불륜관계에 놓인 두 남녀 사이의 열정에 관한 서술에만 집중한다. 그 외의 요소들은 배제되어 있다. 비밀을 고백하듯 쓰여진 긴 일기 묶음같은 글 속에 유부남인 '푸른 눈'의 외국인을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나'의 집착에 가까운 일상이 기록되어 있다.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직설적인 화법으로 보통의 사람이라면 남에게 절대로 털어놓을 수 없을만한 열정의 치부들을 서스름없이 서술하면서도, 때때로 그것이 작가 본인의 실제 경험과 생각임을 의심하게 하는 진솔함이 드러난다. 특히 이 책의 저자가 실제로는 아니 에르노 본인임을 감출 수 없음에도 주인공인 '나'또한 이 책의 원고를 작성하는 주체로 서술된다는 점에서 독자는 그 둘의 감정을 동일시할 수 밖에 없다.
특히 허구 속 인물인 '내'가 이야기의 실제성을 강조하면, 나는 위화감이 들어 그것이 실제로는 '작가'의 경험인 것이 아닐지 의심하게 되었다.
"요즈음 나는 내가 매우 소설적인 형태의 열정을 지닌 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25p
"내게는 형용사의 위치를 바꾸는 일보다 현실에서 일어난 일을 덧붙이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61p
"그 사람이 나를 찾아온 것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는 게 좀처럼 믿어지지가 않는다." 64p
책의 장르가 소설인 한 형식적으로는 허구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되겠지만, '나'라는 인물의 이야기가 실은 에르노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임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토록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소설이란 방패 없이 세상에 공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소설로 쓰여졌기 때문에, 나는 이 이야기가 더욱 현실에서의 마음을 털어놓은 작품이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추측만 가능할 뿐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가 출판된다는 것이 작가에게 있어서는 큰 부끄러움이자 도전이었을 것이다. 개인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이토록 솔직하게 경험해볼 수 있다는 것이 훔쳐보는 느낌이 들어 미안하면서도 감사한 일이었다.
아마 나에게는 앞으로도 나의 지극히 비밀스러운 생각과 경험들을 남에게 털어놓을 일은 없을 것이다. 소설가가 된다고 하더라도 이처럼 대범하고 진솔한 글에는 재능이 없을 것이다. 그런 부분에서 아니 에르노라는 작가를 존경하게 되었다.
"나는 이것이 어떤 결론에도 이르지 않는, 철저히 개인적이고 유치한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 아무도 보지 않으리라 확신하면서 조용히 아무 탈 없이 써내려간 일기처럼 (...) 마침내 원고가 출판물의 형태로 내 앞에 나타나게 되면 내 순진한 생각도 끝장나고 말 것이다." 60p
"나는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66p
아니 에르노 - 단순한 열정은 '감정'과 그 감정이 초래한 '현상'만을 서술한다. 그것이 때로는 사회적으로 건강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순간까지 치우쳐질 때도 있지만, 그 순간마저도 지극히 인간적이고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누구나 감추고 싶어하는 사랑하는 자의 부끄러움을 꾸밈 없이 드러내었다는 점에서 독자는 소설 속 '나'에게 금세 긴밀한 감정을 느낀다. 비밀을 털어놓는다는 건 용기가 필요한 만큼 가까워지는 지향성을 이끌어내는 듯 하다.
책은 인물에 대한 묘사를 지양하고 현상만을 다룬다. 따라서 나는 이 이야기의 사랑을 구성하는 이들이 어떤 인물인지를 알 수 없다. 비록 그녀가 '누군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녀가 사랑하는 이가 어떤 사람이며 그럴만한 가치를 지닌 사람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의 열정적인 감정의 서사를 훔쳐보는 것이 그것 만으로도 독자에게 특별한 경험이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책도, 나에 대한 책도 쓰지 않았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66p